브이월드테크의 일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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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은 그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 그릇에 무엇이 담겨있는가? 누가 사용하는가에 따라 그릇의 가치와 무게, 그리고 의미가 결정된다. 그릇은 스스로 무언가를 담거나 비우는 능력을 가진 능동적인 존재가 아니고 누군가에 의해 담아지거나 비워지는 수동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릇이 아무리 멋있고, 훌륭해도 주인의 판단에 따라 그릇의 가치가 정해진다. 그릇의 생명은 그릇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누가 사용하느냐에 따라 주인에게서 나온다. 주인이 원하는 것을 담기 위해서는 깨끗하게 비워져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그릇으로 채워지기 전에는 기존 인간이 가지고 있던 인간적인 것들이 깨끗하게 비워져야 한다.

 

 

그러나 마음은 결코 스스로 비우는 존재가 아니다. 스스로 마음을 비우지 못한다. 고유한 자아가 마음의 주인처럼 달라붙어 거주한다. 자신의 유일한 처소가 마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아가 마음에서 떠나면 죽는 줄 안다. 비워지면 채워질 텐데 비우지 않는다. 자아가 부패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음이 비워지는 경우가 있다. 타인의 힘과 압력에 의해서 밀려나가는 경우다. 외부의 압력 없이는 스스로 비우지 않는다. 무언가를 채우려고 할 뿐이다. 외부의 압력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하나님을 말씀으로 만나면서 주인인 줄 믿고 붙어 있던 자아가 마음에서 밀려나는 경우다. 이를 복음적인 결단이라고 한다. 다른 하나는 세상이라는 이웃의 압력에 의해 자아가 마음에서 잠시 밀려나는 경우다. 이를 율법적인 결단이라고 한다. 결단은 마음을 비우고, 여는 것이다.

 

도덕적인 과실 혹은 법의 유린에 의해 자아가 밀려나는 율법적인 결단은 오래가지 못한다. 억지로 했기 때문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주인처럼 행세하는 자아를 강제적으로 퇴출시키거나 압박을 가해서 쫒아내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인격적으로 설득하시고, '내가 네 주인이다.'라는 사실을 말씀하시며 나의 마음이 열리기까지 늘 앞에 계신다. 마음의 문을 노크하고 계신다. 

 

마음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 처소다. 나의 마음이 거룩해서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그분이 거하는 마음이 거룩해지는 것이다. 마음은 나의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원래 마음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당연히 주인으로 오신다. 이러한 점에서 마음은 그릇이고, 그릇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마음은 내가 채운 것과 하나님께서 채우시는 것이 동시에 담을 수 없다. 만약에 하나님과 세상이라는 두 가지의 마음이 다 담겨지면 반드시 세상을 하나님처럼 대하든지, 하나님을 세상으로 오해하든지 둘 중 하나가 된다. 우리는 전자를 가리켜 우상숭배라고 부르고, 후자를 가리켜 세속주의라고 부른다.

 

마음을 원래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마음을 열고 하나님을 받아드리면 하나님께서 들어오셔서 내가 만들어 놓은 각종 우상과 세속주의인 것을 다 정리하시고, 새로운 것으로 채워 가신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떤 길로 가야 할지, 일일이 섬세하게 가르쳐 주신다. 이게 원래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이 얼마나 파렴치하고, 얼마나 비참했으며, 얼마나 고통스럽게, 남과 나를 힘들게 했는지 알게된다. 마음이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비록 나의 마음이 질그릇이고 재료가 불순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더러운 재료로 보지 않으신다. 결코 친하게 여기지 않으신다. 자신의 소중한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거기에 거하실 만한 그릇으로 여겨주시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거기에 거하신다.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심장을 담아 놓기 가장 좋은 그릇으로 보신다. 이런 하나님께 나의 마음을 드려야 한다. 누구에게 나의 마음을 드릴 것인가? 

 

이제 결단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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